저번 글에 이어서 올림포스 신들의 테마 어휘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저번에 다룬 신들의 주제어가 번개·물·불 등 명확하고 구체적이었다면 이번에 다룰 신들의 주제어는 연줄·사랑·일손 등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테마성이 더 은근하고 눈에 띄지 않게 표현됩니다.

헤라
서약 일격, 서약 기예, 혼약 고리, 연분 쇄도, 천부적 마력, 일가친척, 마지막 소원, 신혼의 정열, 액운의 대물림, 성대한 환영, 범상찮은 기품, 한 핏줄, 올바른 양육, 모둠 원소 — 개인과 개인을 잇는 결속이라는 테마가 혼인·가족·출생 등으로 확장됩니다.
My word, girl. To have delivered a groveling, impotent Chronos right into our hands, after having utterly destroyed Typhon... one astonishing feat after another, even for a goddess of your pedigree.
놀랐단다, 얘야. 처음에는 티폰을 아주 없애더니 이후에는 힘없이 설설 기는 크로노스를 압송해 오기까지… 아무리 명문가 여신이라지만 대단한 업적을 둘이나 세웠구나.
▶ 헤라는 혼인의 여신답게 혈통, 태생, 지체를 따집니다. 천부적 마력, 한 핏줄 등의 은혜 이름이 이를 반영합니다.
The Titan Chronos is no father of mine. But your father sprang from him, as did my husband, and Poseidon as well. So, now we're all tied up in this little family affair!
티탄 크로노스는 내 아버지가 아니지만, 네 아버지는 내 남편과 포세이돈처럼 크로노스에게서 났지. 그래서 우리 모두 이 깜찍한 집안싸움에 얽히게 된 거란다!
▶ 헤라는 끈이나 실을 연상시키는 '묶이다', '얽히다', '매이다' 따위의 동사를 즐겨 씁니다.
Mortals like to tie themselves down for the remainders of their lives but often barely manage it.
필멸자들은 남은 평생을 서로에게 매이기 좋아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데 애를 먹는단다.
▶ 마찬가지로 끈, 실, 줄이 연상되는 '서로를 한데 묶기 좋아하지만' 정도의 번역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I took little pleasure in this, girl. Merely a trace, at best.
나라고 이러면서 즐겁지는 않단다, 얘야. 실낱만큼이라면 모를까.
▶ '추호/일말도 즐겁지 않다'도 가능하겠지만, 화자가 헤라인 만큼 '실낱'이 제격이겠습니다.
Hera's here for you, girl; and soon, all your enemies shall wish that they were never born.
이모할머니가 네 뒤를 봐주마. 머지않아 네 적들은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게 될 테다.
▶ 출생이라는 헤라의 관장 영역을 반영하는 대사입니다. 헤스티아가 자신을 격의 없이 이모할미(Great Auntie)라고 지칭하는 반면 헤라는 자신을 조금 더 격식 있게 이모할머니(Great Aunt)라고 지칭합니다.

아프로디테
애정 일격, 애정 기예, 황홀 고리, 열정 쇄도, 매혹적 마력, 두꺼운 상판, 정신력 확증, 무너진 결심, 달콤한 항복, 실연의 아픔, 은밀한 호감, 무형의 운무, 신경 쇠약 — 관통하는 키워드는 감정입니다. heart에 대응하는 마음·가슴·심장 등의 명사와 beautiful에 대응하는 곱다·예쁘다·아름답다 등의 형용사를 애(愛)용합니다.
Look at you, beneath the shining moonlight! Welcome, gorgeous, to the lovely surface of our world!
그렇게 달빛 아래 있으니까 너무 분위기 있다! 우리 세계의 사랑스러운 지상에 어서 와, 예쁜이!
▶ lovely를 '사랑스럽다'로 직역하는 것은 보통 지양하지만, 사랑의 여신이니만큼 '사랑'을 남겼습니다.
Oh, he's been practically over the moon, and who can blame him?
하늘을 나는 듯한 황홀경에 빠져 있던데, 누가 탓할 수 있겠어?
▶ '황홀하다'는 물론, thrill에 대응하는 '짜릿하다'도 제우스와는 다른 이유로 아프로디테의 테마어입니다.
That two-timing Chronos is on our side now?
양다리 걸치는 크로노스가 이제 우리 편이라지?
▶ 진지한 얘기를 연애 얘기처럼 하는 것이 작중 아프로디테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Such a beautiful night for such an ugly job you have to do!
이렇게 아름다운 밤에 그렇게 흉한 일을 해야 한다니 안타깝네!
▶ ugly도 beautiful 못지않은 아프로디테의 애용어입니다. '추하다', '흉하다', '볼썽사납다' 등으로 옮겼습니다.
The sordid things said of the two of us, they roll right off his back! Would that my skin were half as thick as his...
우리 둘 사이를 놓고 온갖 추문이 나돌아도, 그이는 그런 뜬소문을 마음에 담아두는 법이 없지! 내 마음이 그이의 절반만큼이라도 단단하면 좋을 텐데…
▶ 비슷한 맥락에서, '더러운 소문'이나 '불쾌한 풍문'보다는 '추(醜)문'이 아프로디테에게 어울리겠습니다.

아폴론
광휘 일격, 광휘 기예, 태양 고리, 섬광 쇄도, 영롱한 마력, 빛살 강타, 완벽한 매무새, 현란한 솜씨, 빛나는 등판, 햇살 방사, 초신성, 추가 처방, 자가 치유, 비상한 재능 — 어느 모로 보나 빛이 주제어입니다. 아폴론 하면 태양신이라는 이미지가 대표적인데, 본작에서는 '빛의 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하죠. 추가 처방(Extra Dose), 자가 치유(Self Healing)는 의술의 신의 면모를 나타내는 은혜 이름입니다.
Before you go charging off to battle and glory once more, please, allow me!
네가 영광스러운 전장으로 다시 한번 돌격하기 전에, 부디 받아줘!
▶ 때때로 후광을 뜻하는 glory처럼 '영광(光)'도 약하나마 빛과 연관이 있습니다.
You're going to put on a brilliant performance tonight, Cousin.
오늘 밤에 네 화려한 활약을 기대하고 있을게, 사촌.
▶ brilliant의 기본 의미가 '빛나는'이듯, '화려한'도 기본 의미는 '환하게 빛나는'입니다.
Let's show them a dazzling display they won't soon forget.
한동안 잊지 못할 만큼 현란한 솜씨를 녀석들에게 보여줘.
▶ 일상에서 의식하지는 않지만, '현란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다'입니다.
I never knew you Underworld gods were so damn courteous.
지하세계 신들이 이렇게 예절에 밝은 줄은 미처 몰랐지 뭐야.
▶ '밝다'라는 테마어의 다른 뜻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끼워 넣은 사례입니다.
Music to my ears!
콧노래가 나오네!
▶ 아폴론이 한편으로는 음악의 신이라는 점을 반영한 대사인데, '듣기 좋네' 쯤으로 옮기면 원문의 의도가 무색해집니다.

아레스
상해 일격, 상해 기예, 검날 고리, 참격 쇄도, 살벌한 마력, 고기 분쇄, 과다 출혈, 쓰라린 부상, 유혈 사태, 상호 공멸, 피투성이, 확인 사살, 집결 함성, 달콤한 피 — 피로 대변되는 폭력성과 가학성이 테마입니다.
Your blood runs red just as your brother's did, and you've lost quite a bit already for the night. I only wish I could have reached you sooner, to have witnessed more of it myself.
자네 피는 오라버니 못지않게 붉군. 오늘 밤에 이미 출혈이 상당했던 모양인데, 자네에게 더 일찍 닿지 못해 좋은 구경을 놓친 것이 아쉬울 따름일세.
▶ '출혈'은 비유적으로 손해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말 그대로 피를 흘렸다는 뜻입니다. Hades II는 이렇듯 비유적 의미와 문자적 의미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언어유희가 흔해서, 번역 과정에서 재현할 기회가 있으면 가급적 재현했습니다.
My dear mother the Queen is careful not to show any member of the family undue favor, not even the children to whom she gave birth...
우리 여왕님은 친족 중 누구에게도 과한 총애를 베풀지 않으시지. 배 아파 낳은 자식에게조차…
▶ 전쟁과 폭력에 비하면 부차적이지만 고통과 아픔도 아레스의 주제어입니다.
A growing number of terrific wars are lately being fought at sea, my kin. You are in some respects leading the charge on the evolving nature of the craft!
갈수록 많은 대접전이 바다에서 치러지는 추세라네, 동포여. 어찌 보면 자네가 전쟁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선봉에 선 셈이지!
▶ 다른 맥락이었다면 '선구자' 등을 생각함 직하지만, 원문의 의도를 살리려면 군대 느낌의 '선봉'이 알맞습니다.
I sense that no survivors of that clash remain, save you. A fine outcome.
그 혈전에서 생존자는 자네 하나뿐이군. 흡족한 결과일세.
▶ 한 명밖에 살아남지 못한 격전이라면 혈(血)전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By now that Sword Hilt which I offered you has seen such bloodshed in your care that I should think its former owner would be pleased! At least I am most certainly, both to contribute and observe.
그 동검 자루는 자네 수중에서 유혈을 족히 보았으니 이전 주인도 기뻐할 걸세! 적어도 나는 참전하고 관전할 수 있어서 기뻐 마지않다네.
▶ 피라는 테마는 물론이고 전쟁, 파괴, 학살을 좋은 것처럼 말하는 아레스의 성격을 드러내는 대사입니다.

헤파이스토스
화산 일격, 화산 기예, 모루 고리, 단철 쇄도, 강고한 마력, 거대 분화구, 융해의 손길, 중금속, 무쇠 가죽, 방호 체계, 초자연적 맷집, 용광로 폭발, 굳센 무예, 맞춤 개조 — 테마 어휘랄 것이 크게 없지만, 있다면 수(手)공업을 가리키는 일과 손입니다. '헤파이스토스의 일손(Hand of Hephaestus)' 등의 은혜 이름이 이를 반영합니다.
Best learn to take more punishment than that, witchie.
고작 그 정도 담금질도 견디지 못해서 어쩌냐, 마녀야.
▶ 대장간의 신이니만큼 '담금질'이 테마상 적합해 보입니다.
So Grandpa Chronos keeps on lending us a hand! To deal with what he did to us, but still! I reckoned he'd be back to his old self by now, but... mayhap you scrambled him enough that it'll stick. Heh... think you could do that to my mum?
크로노스 할아버지가 계속 손을 보태주네! 본인이 친 사고를 수습하는 거지만, 어쨌든! 하루이틀이면 원래 성격으로 돌아가겠거니 했는데, 네가 제대로 손봐줘서 성격이 아예 바뀌었나 봐. 혹시… 우리 엄마도 손봐줄 수 있어?
▶ '손보다'는 헤파이스토스가 '무구를 손봐주겠다'는 맥락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데, 대장일 내지는 망치질을 연상시킵니다.
I can appreciate an armament of damn near any shape or size, but... ones shaped like that Moonstone Axe you got might be my favorite were I forced to choose at weaponpoint.
나는 무슨 형태든 무슨 크기든 엔간해서 무기를 차별하지 않지만… 목에 칼이 들어와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그 월장석 도끼 같은 모양을 고르겠어.
▶ at weaponpoint는 작중 시대를 고려한 at gunpoint의 변형인데, 한국어 관용구 '목에 칼이 들어와도'는 그대로 써도 무방해 보입니다.
You work for the family, you're entitled to the family protection plan.
너는 집안일을 도우니까 가족 특별 할인을 받을 자격이 있어.
▶ 화자가 헤르메스였다면 사업·장사를 연상시키는 '가업'을 고려했겠지만, 헤파이스토스라면 '집안일'이 낫겠습니다.
That's what I like to call hammering out the details. Leave 'em to me next time.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게 이런 거지. 다음부턴 조심해.
▶ 멜리노에를 망치로 두들기고 하는 대사라 '망치'를 넣기는 해야겠는데, 그러자니 원문의 의미를 살릴 길이 없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영미권 속담을 비틀어서 사용했는데, 원래 속담을 아는 독자는 피식할 만한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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