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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des II

Hades II 번역 후기 — 테마 어휘 (1)

Hades II의 등장인물 중 다수는 저마다 관련 어휘랄까, 테마 어휘가 있습니다. 제우스라면 전기·번개·벼락, 포세이돈이라면 바다·파도·항해, 헤스티아라면 화염·열기·불꽃 등 본인의 테마에 맞는 단어를 말합니다. 테마 어휘를 적절히 사용하면 등장인물의 개성이 살아나고 읽는 재미가 생깁니다. 가령 누가 조급하게 굴 때 제우스라면 '번갯불에 콩 볶아 먹겠다'고 할 것을 헤스티아라면 '발등에 불 떨어졌냐'고 하겠지요.

 

문제는 이런 테마성을 번역에 살리기 힘든 경우가 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헤르메스의 은혜를 받을 때 나오는 대사 중 하나는 "Time to send a message."입니다. 헤르메스가 전령이기에 message(전갈)라는 테마 어휘를 쓴 것이죠. 그런데 이를 번역하면 '교훈을 줄 시간이네' 쯤이 되어서 message라는 단어가 사라져 버립니다. 원문의 테마성이 번역문에서 사라지는 예시지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제가 생각한 최선은 '번역 과정에서 테마성이 사라지는 만큼 보충하자'였습니다. A라는 대사의 테마성이 번역 과정에서 5점에서 1점으로 떨어졌다면 B라는 대사의 테마성을 1점에서 5점으로 끌어올리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이 글에서는 원문의 테마성을 번역에 담아낸 사례, 혹은 원문에 옅은 테마성을 번역문에서 추가한 사례를 등장인물별로 다섯 개씩 소개하겠습니다. (앞서 말했듯, 후자는 '원문의 테마성을 번역에 담아내지 못한 사례'에서 잃어버린 테마성을 다른 데서 메꾸려는 시도입니다. 영어와 한국어는 쓸 수 있는 관용어의 목록이 다른 만큼, 이런 접근법이 옳다고 보았습니다.)

제우스

천상 일격, 천상 기예, 폭풍 고리, 천둥 쇄도, 대전된 마력, 전압 급증, 신성한 복수, 번개 투창, 정전기 충격, 후속 낙뢰, 전기 구이, 전력 과부하, 청정한 대기, 청천벽력 — 은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키워드는 전기, 나아가 하늘입니다.

 

Our enemies shall soon be in for quite the shock, I think!

머지않아 우리 적들이 날벼락을 맞겠구나!

▶ 영어 shock는 전기를 연상시키는 낱말이지만, 대응하는 한국어 '충격'은 전기와 관련성이 옅습니다. 

 

I grow weary of this interminable stalemate! Take now my strength, young lady, and crash through the enemy ranks like a bolt in the night!

이 끝없는 교착 상태도 슬슬 넌더리가 나는구나! 참한 조카야, 내 번뜩이는 힘을 받아서 놈들의 진영을 전광석화처럼 휘저어 놓거라!

▶ (lightning) bolt, 즉 번개처럼 빠르게 관통하라는 뜻인데, 마침 '전광석화'라는 적절한 한국어 표현이 있습니다.

 

Why, that Cloud Bangle I offered you is all charged up!

원, 내가 하사했던 구름 팔찌에서 전광이 튀는구나!

▶ 충전(電)이라는 전기 테마 대응어가 있지만, 게임 배경에 비해 지나치게 현대적인 어휘입니다.

 

Contending with upstarts and fools is just a part of godhood, I'm afraid.

벼락부자와 얼간이를 상대하는 일은 신으로서 피할 수 없는 고역이지.

upstart는 '벼락부자'보다 외연이 다소 넓습니다만, '벼락'이라는 테마 어휘를 집어넣을 기회를 살렸습니다.

 

That tingling sensation in the air, that's a sure sign that victory's at hand!

천지에 짜릿한 전운이 감도는구나. 승리가 목전에 다가왔다는 징조렷다!

▶ 물론 전운(戰雲)이지만, '짜릿하다'라는 표현으로 전운(電雲)을 연상시킵니다. '암운'이라는 저주 이름과 게임 속 초상화에 드러나듯 구름 역시 제우스의 테마입니다.

포세이돈

파도 일격, 파도 기예, 물결 고리, 격랑 쇄도, 넘치는 마력, 세찬 물줄기, 바다의 보배, 거친 풍랑, 물밑 보답, 미끄러운 경사, 지하수 분출, 바다 너울, 흐르는 활력, 지진 해일, 감전 급류 — 포세이돈의 테마는 두말할 것 없이 입니다. 이로부터 항해·낚시를 비롯한 곁가지가 뻗어나갑니다.

 

Why, you just wiped the floor with all of those has-beens! And just like that, my fury's ebbed away as well!

오호라, 그 한물간 놈들을 싹 쓸어내 버렸구나! 홧김에 답답했던 속이 아주 뻥 뚫렸어!

▶ 원문이 썰물을 뜻하는 ebb이라는 단어로 테마성을 챙겼다면 번역문은 '한물가다'라는 표현으로 테마성을 챙겼습니다.

 

Augh, you must have hit rough waters from the looks of it, but there's good news: I'm here!

아이고, 보아하니 물깨나 먹은 모양이구나. 그래도 이 삼촌이 왔으니까 마음 놓아라!

▶ '격랑을 헤쳐 왔다', '암초에 걸렸다' 등의 번역도 가능했겠지만, '물깨나 먹었다' 역시 괜찮아 보입니다.

 

I daresay our enemies shall not be getting off the hook anytime soon!
맹세컨대 우리 적들은 한참을 그물 안에서 발버둥 칠 거다!
▶ hook은 낚싯바늘을 가리키는데, 유사하게 고기잡이 용품이고 '남을 꾀거나 붙잡기 위하여 베풀어 놓은 교묘한 수단과 방법'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그물'로 갈음했습니다.

 

That wily old Titan, Chronos! I won't sink to calling him my father!

그 음흉한 노친네, 크로노스! 내 눈에 이 들어가도 그 작자를 아버지라 부를 생각은 없다!

▶ 원문은 '(물속에) 가라앉다'라는 뜻의 sink를 활용했는데, 번역문은 '눈에 흙(물)이 들어가다'로 비슷한 효과를 의도했습니다.

 

That blasted Titan thinks he's got us, but we'll show him he's all wet, won't we, my niece?

그 한물간 티탄이 우리를 물로 보는 모양인데, 우리가 거하게 물을 먹여줘야 하지 않겠느냐?

▶ 다른 캐릭터였어도 '물로 본다'가 괜찮은 번역이었을 듯한데, 화자가 포세이돈이니 금상첨화입니다.

헤스티아

화염 일격, 화염 기예, 염화 고리, 열기 쇄도, 따스한 마력, 불쏘시개, 달아오른 숯, 화력 보강, 끓는 냄비, 꺼진 촛불, 솥단지 예열, 불길 장벽 — 역시 이라는 명확한 테마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열기, 온기 등이 수반됩니다.

 

But I can make a wildfire in a snap! And when I get angry, that's exactly what I do.

하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들불을 내는 건 일도 아니지! 가끔씩 열불이 나면 실제로 곧잘 그런단다.

▶ '열불'이라는 표현은 불이라는 테마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화나다'보다 옛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Got another little warm-up for you right here, hot stuff!

오늘도 따끈따끈한 축복을 준비해 왔단다, 아가!

▶ warm-up에는 '몸풀기'라는 관용적 의미와 '몸을 덥힌다'라는 문자적 의미가 둘 다 담겼습니다. '따끈따끈한'도 비슷하게 중의적입니다.

 

Of course our good friend Typhon's already begun on his climb back up. We'll just have to make it extra tough for him...

우리 친애하는 티폰께서는 역시나 벌써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단다. 최대한 뜨거운 맛을 보여주는 수밖에…

▶ 쓴맛을 보여줄 수도 있고 따끔한 맛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화자가 헤스티아라면 뜨거운 맛이 제격입니다.

 

Regards for helping clear the air a bit up here!

우리 산의 급한 을 꺼줘서 고맙구나!

▶ up here는 번역하는 내내 애를 먹었던 표현인데, '이 위쪽'이라고 직역하면 '여기의 위쪽'이라고 읽힐 소지가 크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down there도 마찬가지입니다.

 

Shines like the sun, Apollo does, oh sure! But there's more than one way to light up a place, you know.

아무렴, 아폴론이 태양처럼 빛나는 거야 명백한 사실이지! 하지만 을 밝힐 수 있는 게 햇빛만은 아니란다.

▶ 원문은 light지만 한국어 '불'이 빛이라는 뜻을 겸하니까 이왕이면 아폴론을 상징하는 '빛'보다는 불이 좋습니다.

 

데메테르

얼음 일격, 얼음 기예, 설한 고리, 한풍 쇄도, 차분한 마력, 혹한 강풍, 풍족한 채집, 꾸준한 성장, 방한 외투, 잡초 박멸, 현지 기후, 냉장 보관, 쌀쌀맞은 외관, 겨울 추수 — 눈에 띄는 테마는 추위지만, 계절과 식물도 주제어입니다. 

 

What does blasted Chronos now intend to do, topple our entire mountain to the Earth?

얼어 죽을 크로노스 놈, 무슨 속셈인지… 우리 산을 송두리째 쓰러트리기라도 하려는 것일꼬?

▶ 제우스라면 '벼락 맞을'이라고 했겠지만 데메테르라면 '얼어 죽을'이 맞겠습니다.

 

You have one grandfather in the cruel Titan, Chronos... and another who was nothing but a mortal farm-boy worshiper of mine.

네 친조부가 냉혹한 티탄 크로노스인 반면… 네 외조부는 나를 숭배하던 일개 필멸자 농부 청년이었다.

▶ cruel의 번역어로 '잔혹한', '잔인한' 등을 고려함 직하지만, 이왕이면 '냉(冷)혹한'이 좋아 보입니다.

 

I shall drain all remaining life from whichever of our enemies have any of it left.

한 놈의 적이라도 한 톨의 생기라도 남았거든 내가 남김없이 거두어들이마.

▶ '한 점' 등도 무난했겠지만 '한 톨'이 농경·곡물 테마가 느껴지고 '거두어들이다'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We've been locked in conflict with Chronos for so long that we've begun to doubt that anything can meaningfully change. I wonder, flower... can you truly rid us of this blight?

우리와 크로노스 사이 분쟁은 너무도 뿌리가 깊어서,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더는 들지 않는구나. 대답해 보려무나, 어린 꽃아… 네가 정녕 이 화근을 뿌리 뽑을 수 있겠느냐?

▶ 원문의 뜻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뿌리'라는 테마 어휘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Of late, even my radiant young sister must sully her delicate hands in all the field work that must be done. She is even beginning to take to it... aren't you, Hera our Queen?

근래에는 내 찬란한 동생마저 야업(野業)하며 고운 손에 흙을 묻혀야 하지. 심지어 그런 데 취미를 들이는 것 같던데… 아니 그런가, 여왕 헤라?

▶ 다른 맥락이라면 fieldwork를 '현장 일' 정도로 옮겼겠지만, 여기서는 '밭일'이라는 문자적 의미를 의식한 표현이기에 야업(野業)으로 직역하고 야업(夜業)으로 읽힐세라 한자를 병기했습니다. 다소 낡은 한자어지만, 올림포스에서 가장 옛스러운 데메테르의 말투에는 부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