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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와 의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는 많은 경우에 생략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특히 일한 번역에서 보다 사용 빈도가 잦고 외연이 넓은 가 전부 일대일로 로 옮겨지는 경우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영어의 Of는 일어의 만큼 만연하게 쓰이지는 않지만 보이는 족족 로 옮기면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를 빼도 괜찮은' 혹은 '를 빼는 편이 자연스러운' 예시는 너무 많아서 열거하는 데 큰 의미가 없을 정도입니다.

the sound of rain | 비 소리 | 빗소리
the fragrance of flowers | 꽃 향기| 꽃향기
The edge of sword | 검 날 | 검날

 

이번 글에서는 이보다 더 심각한 경우, '가 있으면 의미 전달에 방해가 되는' 경우를 다루고자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the city/town/village of X' 등의 구문에서 소유격이 아닌 동격으로 쓰인 of입니다.

the city of Seoul | 서울 도시 | 서울시
the town of Rothenburg | 로텐부르크 마을 | 로텐부르크 마을
The village of Santorini | 산토리니 마을 | 산토리니 마을

 

(역시 동격으로 쓰일 때가 있지만) 서울시를 '서울 도시'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다는 데는 의견의 여지가 없을 듯합니다. 어색하나마 의미 전달이 되는 것은 우리가 서울이 도시인 것을 이미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쿠엥카 도시'였다면 쿠엥카가 나라나 지방 이름이겠거니 하고 짐작하는 독자가 많았겠죠. 이는 두세 번째 예시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산토리니 마을'이라, 산토리니라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일까요? 

 

덜 알려졌지만 더 흥미로운 경우는 의 유무로 주어 목적어가 뒤바뀌는 경우입니다.

Conquest of Constantinople | 콘스탄티노플 정복 | 콘스톤티노플 정복
Russian Invasion of Ukraine | 우크라이나 러시아 침공|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Shooting of Kenedy | 케네디 총격 사건 | 케네디 총격 사건

 

앞에 목적어보다 주어가 흔히 오는 우리말 용법상 "콘스탄티노플정복"이라고 하면 콘스탄티노플이 정복된 것이 아니라 다른 도시를 정복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두 번째 예시는 더 극명합니다. 보이는 대로 옮겨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침공"이라고 쓰면 사실 관계를 정반대로 왜곡하게 됩니다. "케네디의 총격 사건" 역시 케네디가 총을 맞은 것이 아니라 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제가 최근에 번역한 구절 몇 개를 예문으로 들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Summoning of Mercantile Fortune | 상인의 재화 소환 | 상인의 재화 소환
Summoning of Musical Rhapsody | 음악적 시가 소환 | 음악적 시가 소환
Charybdis, Devourer of Ships | 카리브디스, 함선 포식자 | 함선 포식자 카리브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