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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별거더냐

오늘의 주제는 종결어미 -더냐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해라할 자리에 쓰여, 과거에 직접 경험하여 새로이 알게 된 사실에 대한 물음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어미로는 -더니, -던, -데 등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듣는 이의 경험에 대한 물음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잘 계시더냐?
어머니는 잘 계시더니?
어머니는 잘 계시?
어머니는 잘 계시?

 

이렇게 물으면 화자는 청자가 어머니가 잘 계신지 알 수 있는 경험을 했다고 추측한다는 뜻이 내포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맥락에 어울리는 어미지요.

다솔: 제가 이번에 본가에 내려갔다 왔거든요.
춘재: 그래, 어머니는 잘 계시더냐? / 그래, 어머니는 잘 계시더니?


청자가 그런 경험을 했다고 추측할 맥락 없이 막연히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경우에는 -더-가 빠진 -냐, -니가 자연스럽니다.

다솔: 큰아버지,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춘재: 그래, 어머니는 잘 계시? / 그래, 어머니는 잘 계시?

 


그런데 유독 -더냐는 청자의 경험 유무에 관계없이 -냐의 옛스러운 대체어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드라마 <태조 왕건>의 한 대목을 인용하겠습니다.

궁예: 미륵을 보았사옵니다.
범교: 미륵을 보아? 네놈이 미쳤구나. 미륵부처께서 네게 오셨단 말이더냐?
궁예: 그러하옵니다.
범교: 그렇다면 그 부처님께서는 어디 계시느냐? 어디 내 앞에 보이거라!
궁예: 지금 큰스님 앞에 앉아 있지 않사옵니까?
범교: 네놈이 미륵이란 말이더냐?

 

여기서 -더냐는 청자가 과거에 직접 경험하여 새로이 알게 된 사실에 대한 물음이라 하기 힘듭니다. 범교는 궁예에게 "(네가 들은 어떤 말이) 네놈이 미륵이란 말이더냐?"라고 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는 자연스럽지만 "지금 그게 무슨 말이더니?"는 어색하고, "내 말은 그게 아니."는 무난하지만 "내 말은 그게 아니더라."는 유체 이탈 화법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도 -더냐의 이런 쓰임이 (방송 3사 중에서 어문 규정을 가장 깐깐히 지키는) KBS 드라마에까지 당당히 등장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