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ponsible과 책임감
게임을 오래 즐겨오신 분들은 responsible gaming이라는 표현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대개 '책임감 있는 플레이' 정도로 옮겨지는 표현인데, 저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한 번역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한국어에서 책임감이란 대개 의무나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기 때문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풀이되어 있군요. 함께 실린 예문들은 이렇습니다.
그는 이 사태를 하루빨리 수습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벌써부터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는 이제 선택권 대신 남쪽으로 가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보시다시피, 같은 자리에 의무감을 대신 써도 이상하지 않을 문맥들입니다. 반면, 영어에서 자주 쓰이는 'responsible ~ing' 꼴의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responsible drinking
responsible spending
responsible partying
같은 식으로 직역하면 책임감 있는 음주·지출·파티 정도가 되겠군요. 그런데 정확히 무엇에 대한 책임감일까요? responsible drinking을 간단히 설명하면 과음하지 않는 것, 적당히 마시는 것입니다. responsible spending이라고 하면 과다 지출하지 않는 것,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쓰는 것입니다. responsible partying이라고 하면 분위기에 취해 사고를 치거나 하는 불상사 없이 파티를 즐기는 것입니다. 차라리 슬기로운 음주·지출·파티 생활이라고 하면 (조금 웃기지만) 의미는 더 잘 통하지 않을까요?
Longman 영영 사전에서 responsible을 찾아보면 '책임 있는'(in charge of)이라는 뜻 아래 '분별 있는'(sensible)이라는 뜻으로도 풀이해 놓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몇몇 영한 사전에서도 responsible의 대응어로 "분별 있는", "지각 있는"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responsible gaming을 '책임감 있는 플레이' 대신 '분별 있는 플레이'로 옮기는 것은 부정확한 '의역'이라 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전자를 다소 부정확한 '직역'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